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기 전까지 나는 한국에서의 생활에 불만을 가진 적이 없었다. 운이 좋아서 대학교 2학년 때 언니의 도움으로 유럽여행을 갔을 때 사람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부러웠다. 공원에서, 길에서 앉아서 그림 그리고 책 읽으며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래서 '나도 한 번은 해외에 나가서 살아 보고 싶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캐나다는 아니었다.
캐나다를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남미를 여행하고 싶어서였다. 남미를 가기 전에 캐나다 워홀가서 돈을 모으고 새로운 경험을 쌓으려고 했다. 나의 목표는 남미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직도 남미는 한 번도 못 가봤다. 남미 여행을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직장생활이 힘들어서였다.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임신한 동료 선생님들이 갑자기 2분이 생겼는데, 출산과 육아휴직을 문제로 내부에서 편이 갈리고 균열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노동자로써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누리겠다는 것이 왜 이렇게 자기들의 이익만 생각하며, 임산부에게 눈치 주고 치사하게 굴었는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 사건으로 나는 한국 사회에 대한 환멸을 느꼈고, 내가 다니던 직장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다 그런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 말고 다른 곳으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캐나다를 워킹홀리데이를 택했다.
다른 워홀러들과는 다르게 나는 돈이 목적이었기에, 한국에서 퇴사하고 1달 동안 워홀 준비를 하면서 온라인으로 직장을 미리 구했다. 우연히 올라온 워홀 카페에 구인광고에 연락을 해서 직장을 구하고 갔었다. 남들과 다르게 벤쿠버, 토론토, 캘거리와 같은 큰 도시가 아니라 나는 숙소 제공해주는 시골에 있는 주유소로 일을 하러 갔다. 워킹홀리데이 박락회 같은거를 가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돈을 모으기에는 시골로 가는게 좋다고 했던 말에 그렇게 일을 구했다. 시골에서의 삶은 너무나도 소박하고 한적하며 사람들이 정말 100% 캐내디언이라서 좋았었다. 같이 일하는 스탭들도 모두 한국사람이라서 같은 숙소에서 지내면서 외로움도 느끼지 않았다.
그때 같이 일하는 스탭 중에서 영주권을 목표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어울려 지내면서 이야기하다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캐나다 이민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한 번 도전하기로 했다. 어차피 남미를 여행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나이먹어서 점점 더 일을 구하기 힘들어지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하고 쉬고 싶을 때는 한두달 정도 시간내서 여행다녀오고 싶은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반면에 캐나다에서는 나이 제한이라는 것이 없으니까 일하다가 여행다녀오고 다시 일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국보다는 자유롭게 여행하고 일하면서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남미여행을 미루고 영주권을 먼저 따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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